일본과의 협력에 대한 수카르노의 변명 (1)
자바해(海) 만구(灣口)를 통해 그리운 조국의 땅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오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우리는 바다 냄새를 풍기는 크고 작은 배들이 줄지어 있는 곳을 지나 다시 부두에 연결시켜 만들어 놓은 양어장을 거쳐서 파사르 이칸(Pasar Ikan) 항구로 들어갔다. 항구의 입구가 어찌나 좁았던지, 두 척의 배가 간신히 서로 통과할 정도밖에...
View Article일본과의 협력에 대한 수카르노의 변명 (2)
1943년 말, 나는 나의 계획의 2부를 실행에 옮겼다. 그 계획이란 '페타(PETA)'라는 의용군 형태로 우리 국민들에게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그들이 점령한 영토의 도처에서 막심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점차 세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네덜란드 통치하에서 교육이란 받지 못하고, 또한 대체로 친(親)서방적 감정과는...
View ArticleJFK 보좌관의 수카르노에 대한 단상
발전 도상에 있는 아시아 제국(諸國) 가운데 인도는 여전히 가장 이성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영국이 2차대전 전후(戰後)에 이룩했던 바와 같은 숙련된 솜씨로 제국(帝國) 체제에서 탈피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에서 민족주의자들의 반항은 극심한 분노에 찬 것이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949년, 인도차이나는 특히...
View Article제3세계 신흥 독립국에 대한 JFK의 방침
아이젠하워 시대엔 대통령이 외국의 지도자들과 만나는 것이 업무 수행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은 친선을 목적으로 한 외교에 치중했으며, 그밖의 사안은 전문가에게 일임되었다. 그러나 케네디 시대가 되면서부터 친선과 의례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외교 실무까지도 취급하게 되었다. 사실 케네디는 그러한 형식적인 방문이나 인사 치레에 대해선...
View Article연말 시즌을 맞이한 멕시코시티의 중심가
1940년부터 70년대 전반까지 멕시코 경제는 연평균 6%의 성장을 지속해 왔다. 30여년 동안 낮은 수준의 인플레에 기반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멕시코의 기적(Mexican Miracle)'이라 지칭되었다. 멕시코 경제성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발도상국 사상 최초로 국가의 역할이 항구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수립되었다는데 있었다. 제도혁명당[PRI] 정권은...
View Article그나마 본전 건진 것 가지고 포장하기는ㅋㅋㅋ
무슨 엔차관 한 푼조차 아쉬워했던 쌍팔년도 이전도 아니고 말이야, 응?ㅋ 10억엔 꽁돈(?) 던져준 댓가로 영원히 shut up하라는 옛 종주국의 성의에 이토록 반신반의할 줄은 몰랐다. 수식어 치장해가며 타결시켜봤자 뒤돌아서면 서로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할 것은 자명한 시나리오고...남조선 입장에서 애당초 기대할 만한 실익이 정녕 무엇인지에 관련한 사회적 합의...
View ArticleYS를 떠나보낸 해, 중앙청 청사와 반일의 상관관계를 그리며
지금까지 광화문 삼거리 정면에 버티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더라면... 석조전 제외 나머지 근세-근대의 문화 유적이 고갈되어 거의 전무하다 싶은 남조선인들이짝퉁 형식이라지만 엄연히 아시아 최대의 르네상스형 건축물을 가질 수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깝지.이런 양식의 건축, 청사 건물 같은 근대 건축물이 또한 얼마나 고풍스럽고도 아름다운데?ㅠㅠ 일제...
View Article丙申年 새해의 첫 지름
라틴아메리카 카우디요 체제 작동 원리의 민낯을 고발한 아스투리아스(Asturias) 著 <대통령 각하> 인디오적 감성과 크리오요 생활관의 조합 및 양면성을 사회 비평에 접목시킨 노벨 문학상 수상작. 아다치 미츠루 作 <미유키> 와이드판 전집. 이복 남매간...
View Article위안부 합의, 반일 포퓰리즘 외교의 자승자박 정치학
물론 주어는 없습니다.ㄳ "역사는 항상 보복을 수반한다. 보복이 없는 역사란 없다. 그래서 역사를 다룰 때엔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일(韓日) 정부간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 국내의 한 전문가는 '역사를 국유화 ・사유화할 수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이 빚어낸 참사'라고 규정했다. 소녀상 철거와 재단 운영비 10억엔 지원, 그리고 위안부 이슈를...
View Article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장경국의 외유(外遊)
국부천대(國府遷臺) 이후 대륙이 수복되지 않은 전제하에 '절대로 대만을 떠나 외유를 떠나지 않겠다'는 방침까지 세웠던 장개석의 대리인격으로 장경국은 행정원 정무위원의 직함을 가지고 이따금 미국과 아시아 근린 국가들을 방문해 외교 교섭에 임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빈도는 지극히 한정적으로 장씨 부자(父子)의 입장에선 '대륙의 통치자'에서 '일개 섬나라...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초봄의 멕시코시티 (2)
1976년 연말 집권한 이래 포르티요(Portillo) 대통령은 '신(新)정치조직 및 선거법' 공포, 야당 합법화 등 일련의 정치 개혁안을 내놓았는데, 1980년은 이같은 새로운 제도들이 정착되어간 해였다. 특히, 권력이 6년 임기의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멕시코 특유의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낮았던 의회가 농업 개혁 ・인플레이션 ・고용...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1980년 봄의 과테말라
2만 3천여명이 사망한 1976년 진재(震災)의 여파조차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20년 가까이 지속된 산발적 내란으로 군사정권의 선주민(先主民) 학살 등 '인권 탄압' 문제가 국제 이슈화되던 시절. 한때 'United Fruit 제국(帝國) 산하의 바나나 왕국'이라 지칭된 마야 문명의 고토(故土) 과테말라에선 기약없는 백색 테러와 과격해진 게릴라전의...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막바지, 팽호(澎湖) ・ 대만(臺灣) 상륙전
1895년 3월 23일, 팽호 본도(本島)의 동남쪽 이정각(裏正角)에 상륙중인 일(日)육군 혼성여단 대만 평정에 대비한 후방 정리와 전진기지의 구축 차원에서 3개 대대 병력으로 실행되었다. 해안의 청군(淸軍) 수비대...
View Article어느 러시아 외교관의 청일전쟁 논평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에 따라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 외에도 포트 아서(Port Arthur, 旅順)라는 거대한 해군기지와 함께 대만과 팽호군도(澎湖群島),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일부 유럽 열강은 이 조약의 마지막 조건이 과도하다고 여겼다. 일본이 강력한 전략 거점을 소유함으로써 청국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을 걱정한 것이다. 러시아와...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조선 전역(朝鮮戰役), 3세기만의 Rematch
1894년 6월 13일,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와카노우라 마루(和歌浦丸)와 일본 혼성여단의 선발 대대 동학란 진압을 구실삼아 전날까지 청군(淸軍) 파견대도 아산에 상륙함으로써 전운이 고조된다. 1894년 6월 16일,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소장의 지휘로 인천만에 나타난...
View Article아베상이 경복궁 마케팅까지 다 해주시네~
http://kor.theasian.asia/archives/157212 뭐, 이해못할 바 아닙니다. 이런 불경기에 먹고 사니즘을 위해서라면 반일 세뇌의 교리도 잠시나마 접어둬야죠? 아무렴 겉으로야 역사를 망각한 왜구들한테 훈계하는 군자연 척 입반일, 입애국 코스프레 열심히 시전해봤자, 뒷구녕으론 전속 요리사 고용하고, 스시랑 청어알 공수해가며 ㅊㅁㅊㅁ했던...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남만주 전역(戰役), 최초의 대륙 진공
일본군 공병대가 가설한 압록강 군교(軍橋), 청군의 위협 및 유빙(流氷)과 사투하던 끝에 완공되었다. 1894년 10월 25일 새벽부터 개시된 도하 작전은 일본 군사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대륙 진공이었다. 구련성(九連城) 시가지 전경, 명청(明淸)시대...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요동 전역(遼東戰役), 대련 ・ 여순 공략전 (1)
요동반도 남동쪽 화원구(花園口)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 선함(船艦)들의 광경, 1894년 10월 29일 제1군의 압록강 도하와 보조를 맞춰 오야마(大山) 육군대신의 제2군도 닷새전 이곳에 상륙했다. 화원구에 주둔한 제2군 군영의 전경, 수심이 얕은 요동 연안의 지형을 감안해...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요동 전역(遼東戰役), 대련 ・ 여순 공략전 (2)
여순구 서북쪽 방가둔(方家屯) 부근에서 포격중인 산포(山砲) 중대의 광경, 1894년 11월 21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사격과 보병 돌격으로 의자산(椅子山) 포대가 1시간만에 점령되었다. 일본군 보병 제1연대에게 격퇴당한 청군 잔당이 요새 위에서 대오를 정비하는...
View Article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요동 전역(遼東戰役), 대련 ・ 여순 공략전 (3)
금주성 동쪽 외곽에서 제2군 전몰 장병들을 위한 초혼제(招魂祭)가 거행되는 장면, 1894년 12월 21일 바로 전날, 청국은 차관급 대신 2명을 전권으로 기용해 본격적인 대일(對日) 강화를 모색하게 된다. 초혼제 식장에서 육군 보병 제2연대 및 제3연대 병사들이 동료 전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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