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연말부터 전세계는 영국 ・소련 ・미국 등 '대(大)동맹(Grand Alliance)'[처칠이 그의 조상 말보로(Marlborough) 공작 당시의 용어에서 차용한 말이다] 및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추축국과 이들의 위성국들로 양분되어 전쟁을 벌였다. 같은 해 처칠은 자신이 집필한 말보로 공작의 전기 4편에 대동맹이 블렌하임(Blenheim) 전투에서 승리했던 사실을 명시하며 '거의 전세계가 뛰어든 전쟁의 경우 양측은 모든 수단을 사용해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국은 1942년 1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모든 자원을 활용해 히틀러를 무찌르겠다고 맹세했다. 영국과 미국은 나폴레옹을 물리친 워털루를 골고다(Golgotha) 언덕으로 묘사한 바이런(Byron) 경의 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영감을 얻어 연합국이 또 하나의 역사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추축국에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전부터 전후 유럽의 새로운 질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두 가지 원칙에 집착했고, 이는 1919년 당시의 방안과 똑같았다. 하나는 독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으로 핵심은 독일의 국가 형태와 독일인들에 대한 처리 방안이었다. 고위 외교관인 콘 오닐(Con O'neill) 경은 독일인들의 본능과 역량을 감안할 때 국가 사회주의는 부적합한 형태이기 때문에 번영하되, 무력은 지닐 수 없는 '슈퍼 스웨덴' 형태로 바꾸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보다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한 처칠은 종종 독일 남자들을 '거세'시켜 공격성을 없애거나, 독일인들이 '뚱뚱하고 발기 불능'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베르사유 조약이 미친 영향을 감안해 소련의 공산주의가 권력 공백을 메울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또다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처칠은 내각 회의에서 '독일을 지나치게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며, '독일인들이 러시아에 저항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의 대다수 정책 담당자들은 소련에 일부 헤게모니를 양보하더라도 독일을 분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 대륙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연합국들이 결성한 유럽 자문위원회(EAC)의 영국측 대표인 윌리엄 스트랭(William Strang)은 1943년 5월 말, '독일이 서유럽을 장악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단 러시아가 동유럽을 장악해주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스트랭은 '러시아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수년 내에 독일이 다시 우리를 위협하는 것보단 덜 위협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독일을 유럽 대륙에 통합시켜 [전후 민주화된] 독일도 같이 스탈린에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 by 브랜든 심슨(Brendan Simms) 著 <영국의 유럽> 제7장 '단일대오'에서 발췌

독일 육군 대연습 참관차 뷔르츠부르크(Würzburg)에서 카이저를 배알(拜謁)한 풋풋했던 시절의 처칠
행운의 어리광쟁이 같았던 이 군주는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고, 망명지에서 객사하는 운명을 맞았다.
근데 윈스턴 영감. 댁이 모셨던 윈저 왕가의 구성원들에게도
선조 대대로 독일계 혈통이 진하게 스며들었는데, 그 냥반들도 죄다
고자로 만들어야 한단 말이오? 이 무슨 망측한 발상이시오??
PS : 독일인을 뚱보에 고자로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볼셰비즘에 맞서 쓸만한 고기 방패로 조련시킬 수 있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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