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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Adler)의 추락, 항복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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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해서 독일을 초토화시키지 않다니, 정말 치욕이다. 독일 젊은이들의 손발을 자르고, 늙은이들의 머리 가죽을 벗길 수 있었는데! 하지만 뭐, 50년 동안 프랑스와 벨기에를 위해 일하도록 놔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

- by 휴전협정 타결 소식을 듣고 소감을 피력한 미(美) 육군 제129 야전 포병연대 장교 해리 S. 트루먼 대위


"우리 조국은 이제 패전의 쓰라림을 맛보고 우리를 승자의 은총에 내맡긴 만큼 앞으로 무거운 압제에 놓이리란 것, 휴전은 지금까지의 적의 도량을 믿고서 수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눈앞이 또다시 캄캄해져 비틀거리며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불타는 듯한 머리를 이불과 베개 속에 파묻었던 것이다. 어머니 무덤 앞에 선 날 이래로 두 번 다시 울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 by 포메라니아 파제발크(Pasewalk) 병원에서 요양 중 패전의 비보를 접했던 당시를 회상한 아돌프 히틀러 하사



1918년 11월 7일 늦은 오후,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는 파리 북동쪽 상리스(Senlis)에서 특별 열차에 올랐다. 참모총장 막심 베이강(Maxime Weygand)을 위시한 세 명의 참모와 로슬린 웨미스(Rosslyn Wemyss) 제독을 비롯한 영국 해군 대표단이 동행했다. 열차가 움직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고, 콩피에뉴(Compiègne)의 르통드(Rethondes) 숲 속 빈터에 정차했으며, 이어 기다림의 긴 밤이 시작되었다.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Matthias Erzberger)를 위시한 독일 대표단을 태운 열차는 다음날 아침 7시에서야 도착했다. 두 시간 뒤인 11월 8일 오전 9시. 포슈의 특별 열차에 사무실로 개조된 기차칸에서 양측간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우선 독일 대표단이 입장해 협상 테이블 앞의 지정석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총사령관 포슈를 위시한 프랑스 대표단이 입장했다.

에르츠베르거는 나중에 포슈를 이렇게 회고했다. '작은 체구에 강하고, 힘있어 보이는 용모였다.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악수 대신 군대식 인사와 민간인 측의 고개를 까딱하는 인사가 오간 뒤 대표단은 서로를 소개했다. 에르츠베르거, 알프레트 폰 오베른도르프(Alfred von Oberndorff), 데틀로프 폰 빈터펠트(Detlof von Winterfeldt), 에른스트 반젤로프(Ernst Vanselow)는 위임장을 제시해야 했다. 이어 포슈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이곳엔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르츠베르거는 연합국의 휴전 제안을 알고자 왔다고 대답했고, 포슈는 메마른 어조로 자신은 제안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베른도르프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독일측은 어떤 전략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저 연합국의 휴전 조건을 알고 싶을 뿐이라 했는데도 포슈가 단호하게 내걸 조건이 없다고 하자, 에르츠베르거는 윌슨 대통령이 언급했던 마지막 조항을 거론하며 휴전 조건을 천명하는 것은 분명히 포슈의 권한임을 상기시켰다. 그제야 포슈는 의중을 드러냈다. 독일측에서 휴전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경우에만 자신도 조건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이다. 포슈에겐 독일인들한테 이런 굴욕적인 행동을 면제해주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이제 에르츠베르거와 오베른도르프는 그들이 공식적으로 독일 제국 정부의 명의로 휴전을 요청한다고 천명했고, 베이강 장군이 11월 4일 연합국이 결의한 중요 조항들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총사령관 포슈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없이 목석처럼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웨미스 제독도 냉정히 임하려 했지만, 외알 안경과 커다란 뿔테를 신경질적으로 더듬고 있었다.

나중에 베이강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독일 대표단은 조건들을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창백하고 굳은 표정이 되었다. 젊은 해군 대령 반젤로프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약은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의 점령 지역과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독일군이 즉각 철수할 것, 포슈가 강력히 주장했듯이 라인강 서안(西岸) 지역을 연합국이 점령하고, 동안(東岸)의 교두보인 마인츠 ・코블렌츠 ・쾰른 주변의 군대를 철수시킬 것, 각종 무기와 비행기 ・전함 ・열차 등의 많은 군사 장비를 양도할 것, 독일이 러시아와 체결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폐기할 것 등을 내용으로 했다. '정말로 비통한 순간이었다'고 베이강은 회고한다. 그럼에도 각 조항들을 제시받은 후 빈터펠트 장군은 조건을 다소 완화시켜 보고자 했다. 본국 정부와 협의를 해야 하니 최소한 서명까지 얼마간 말미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독일측에서 조건을 검토하는 동안 휴전을 하자고 제안했다. 포슈는 두 가지 제안을 즉각 일축했다. 그러고는 프랑스 시간으로 11월 11일 오전 11시까지 결정하라며 최후 통첩을 했다. 휴전은 협정 서명 후에야 시작될 것이다. 동시에 포슈는 같은 날 지휘관들에게 전문(電文)을 발송해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결정적인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격의 강도를 절대로 낮추지 말라고 명령했다. 포슈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독일은 지금 그대로의 조건에 대한 가부(可不)만을 말할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양측 대표단의 단원들끼리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용인해주었다. 에르츠베르거는 최소한 이행 기한과 양도해야 할 무기의 양에서 조건을 완화해주길 희망했다. 그리고 독일 국내에서 기아가 발생하고,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첫 회의가 끝나고 볼프-하인리히 폰 헬도르프(Wolf-Heinrich von Helldorf) 대위가 연합국이 내건 조건을 스파(Spa)의 독일 사령부에 알렸다. 오후에 '개별 협상'이 시작되어 이틀을 끌었고, 시간은 통첩 마감을 향해 멈추지 않고 흘렀다. 11월 10일 오후 9시, 마감 시한을 14시간 앞두고 독일 수상의 암호 전문이 콩피에뉴에 도착했다. 내용은 휴전 협정의 조건을 수용할 전권을 에르츠베르거에게 위임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과 상관없이 독일 대표단은 [개별 조건을 놓고 설득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막판 타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11월 11일 오전 2시부터 5시 사이에 텍스트가 약간 수정되었다. 조약의 가혹함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비행기 2천대 대신 1700대를 양도하는 것으로, 기관총 3만문(門) 대신 2만 5천문을 양도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기관총에 대한 조건 수정에 포슈는 몹시 화를 냈다. 하지만 에르츠베르거는 독일 국내의 반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덧붙여 라인강 동안의 중립 지역을 40km 대신 10km 반경으로 줄여야 하며, 독일군이 서안에서 철수하는 데 25일은 너무 빠듯하고, 31일은 주어야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일에서 기아의 위협이 고조되어 연합국이 휴전 후 36일간 독일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1918년 11월 11일 오전 5시 20분, 흐릿한 가을 아침이 밝아 오기도 전에 휴전협정 문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이 이루어졌다. 포슈와 웨미스가 먼저 서명하고, 독일 대표단 4명이 차례로 서명했다. 만년필 뚜겅을 닫았을 때 에르츠베르거는 조항들의 몇 가지는 실현 불가능할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침통한 어조로 이런 말을 남겼다.


"7천만 민족은 고통당할 수 있지만, 절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포슈는 이 말에 냉담하게 '그렇지요'라고 답했고, 양측 대표단은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 by 다니엘 쇤플루크(Daniel Schönpflug) 著 <1918 : 끝나 가는 전쟁과 아직 오지 않은 전쟁>에서 발췌




              전용열차 사무실에서 항복 교섭을 위해 내방한 독일 전권단과 대면중인 연합군 총사령관 포슈 원수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촉발된 전쟁은 유럽 세계를 조락(凋落)시키고, 콩피에뉴 숲에서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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