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그저 그런 2세~3세 세습 정치가인 줄 알았다.
전후(戰後) 입지전적 정계 인사들의 아들 ・손자로 태어나 잘 다져진 텃밭을 딛고 정치에 뛰어든 '도련님'들.
외풍 차단된 정치명가(名家) 온실속에서 그럭저럭 경력쌓고 총리까지 올랐지만, 이내 실력드러나
1년도 채울까 말까 물러나길 거듭했던 '학습부진아', 일본정치를 갈수록 후퇴시킨 '무늬만 정치인'들 말이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다. 처음엔 분명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해가 복잡다난하게 엇갈리는 국제외교와 국내정치를 능수능란 주무를 줄 안다.
이웃나라 카운터파트들과의 '밀당' 힘 조절도 예사롭지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말이다.
한국과 중국에서야 '내셔널리즘 신념'으로 무장한 괴물 극우파 정도로 비쳐지지만,
일본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안면몰수로 일관한 비밀보호법 제정을 제외하곤,
'착실한 스탠스로 국민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려는 소통하는 정치가'의 이미지가 일반적이다.
우익전범 외조부의 DNA를 계승해 전전(戰前)의 유산을 재현하겠다는 시커먼 속을 품었을진 모르나,
싹싹한 표정으로 열심히 자신의 주장을 번복해가며 설명해주는 '친절한 아베'가 호감을 사는게 사실이다.
반면, '평화체제 옹호'를 부르짖는 일본의 혁신세력-자민당내 비둘기파는 낡고, 쇠약해졌다.
진부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의 운동방식에 일본 유권자들은 싫증을 느끼고 흥미를 잃은지 오래다.
한국 일각에선 우경화에 대응해 일본의 시민사회 및 양심세력과 연대하자는 '주변부 공략론'이 제기되던데,
과연 현재 일본의 바닥 민심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사흘전 방영된 후지TV 인터뷰는 이른바 '아베표 신(神)의 한 수'를 보여줬다.
일한(日韓) 정상회담 여부를 묻는 사회자한테 총리가 되묻는다.
"당신이 '나를 만나려면 먼저 술 한잔 사라'고 얘기했다 쳐요.
'그래, 내가 한 잔 살게'라고 하면 어때요? 내가 무언가 꿀리는게 있고, 약한 입장이란 뜻 아닌가요?"
총리대신 아베 신조가 일본 국민을 대표한 이상, '내가 곧 일본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그러할진대
위안부 문제의 해결 같은 조건이 달린 정상회담 따위에 응하는건 일본 국민의 자긍심을 짓밟는 행위이며,
그런짓은 절대로 안 한다는 의지 표명이다. [한국보단 주로 중국을 의식 ・겨냥한 뉘앙스였지만]
[한국 입장에선] 사실 억지다.
주사 심한 친구한테 '고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안 만나겠다'는게 친구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일까.
어쨌거나, 일본 국민들에겐 '듬직한 지도자'로 비춰지는데 부족함이 없었을 터다.
그러면서도, 상대국을 배려해주는 듯한 세심함까지 갖췄다.
헤이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어로 인사한 아베를 외면한 걸 지적하는 사회자에게
'이어폰을 착용한데다,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라며 스스로 몸을 낮췄다.
사회자가 '결례 아니냐'고 몰아붙이자 '[박 대통령도 일본에 강경한] 국내 분위기를 짊어진게 아니겠느냐'며
짐짓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곤혹스럽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이면서 사회자를 두둔한다.
그러고는 넌지시 이렇게 말한다.
"국가 對 국가 관계에서 자국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어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양국의 공동 대응이 요구됩니다.
이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는걸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둘러치고 메쳐도 할 말은 다 한다. 감정적 대응한 할게 아니라, 보다 커다란 그림을 보라는 충고다.
자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중국에 꿀리지 않으며, 미국의 호응을 얻어내고, 한국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이웃과 동행해야 할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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