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헬미나(Wilhelmina) 공원의 아체(Aceh) 기념비, 수마트라의 정복과 평정을 기원하며 세워진 것이다.
기념비는 독립 후인 1957년 철거되어 모스크가 들어섰으며, 주위로 축하식전을 맞아 장대가 꽃혔다.

워털루 광장의 미키엘스(Michiels) 기념비를 전후로 장대와 네덜란드 삼색 국기가 장식 ・ 게양된 광경
1849년 발리 탐험 및 원정대를 인솔하다 전사한 식민군 장성에게 봉헌되었던 추도용 조형물이었다.


도심을 관통하는 칠리웅(Ciliwung) 강의 교각에 세워진 간판과 현수막, 백인 경관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입구 간판엔 '빌헬미나 여왕 만세'라는 구호가 부착되었으며, 여왕 명칭의 이니셜 W자도 표시되었다.

광장 방면의 도로, 마차 행렬이 오가는 가운데 우측의 강변으로 토착민 용병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리셉션에 초청된 왕립해군 수병들,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당국은 식민지에서 승무원을 대거 모집했다.
나폴레옹 전쟁 후부터 동인도 제도의 경영이 정부로 이관되어 극동 파견대의 중요성 역시 높아졌다.

차이나 타운의 입장문, 수세기 전부터 정착해왔던 화교들은 토착 사회와는 별개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특유의 상술과 중개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은 점차 자바 경제계의 큰손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차이나 타운 거리, 전방의 문루 편액엔 여왕에게 바치는 '만수무강(萬壽無疆)'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퍼레이드에 동원된 동인도 식민지군 장병들, 네덜란드 본국의 육군과는 별개의 계통으로 운용되었다.
19세기 들어와 영내의 각 도서에 대한 중앙집권화 팽창이 추구되면서 아체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실내 연회장, 열대의 이국적 정취를 간직한 가운데 홀의 정면 맞은편으로 여왕의 흉상이 안치되었다.
세기 후반까지 자바에서 시행된 강제 경작제의 인센티브는 유럽 본국에 풍성한 세입을 안겨주었다.

빌럼(Willem) 공원의 정원에 세워진 여왕의 조각상, 꽃이 부착된 비단 천조각이 기둥을 두른 모습이다.

박물관 근처의 대로에 세워진 기념문, 오라녜(Oranje) 왕가에 경의를 표하는 문구가 간판에 적시되었다.
야자수 잎사귀 등의 트리 장식과 삼색기 및 왕관 모형도 조화를 이루며 치장된 형태로 설계한 것이다.

지형국 사무소 앞에 배치된 출입문,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지도가 그려진 지구본 모형이 올려졌다.

금융 조직과 대외 무역망이 네덜란드계나 화상 위주로 독점되어 기타 외국인의 상거래를 제약시켰다.

탄중 프리오크(Tanjung Priok) 항만 해역에 정박한 관영 선단, 식전을 기해 깃발과 리본으로 치장했다.

이날의 주인공이었던 18세 소녀에겐 다사다난할 향후 반세기 동안의 재위기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뷔르템베르크 공주 파울리네(Pauline)의 결혼식 당시 슈투트가르트 궁전에서 회동한 친척 왕공족들
공주와 사촌지간인 빌헬미나 여왕도 모후를 대동해가며 해당 식전에 참석했다. 1898년 10월 27일
tag : 동인도, 바타비아, 네덜란드, 식민제국, 대관식, 빌헬미나, 오라녜왕가, 18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