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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체제의 탈각, 아베의 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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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행보가 거의 일상적으로 한국인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전후 70주년이 되는 이 여름에 또 다른 풍파가 불고 있다. 무력공격사태법, 주변사태법 등의 개정을 골자로 하는 ‘안보법제’가 중의원을 통과하여 올여름에는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아베는 왜 이러는가? 인간의 행동 뒤에는 심리가 있다. 아베의 행동과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있다. 그가 현직 총리로서는 드물게 출간한 책이다. <아름다운 나라에>(2006년)의 ‘완성판’이라 강조하면서 2013년 1월 <새로운 나라에>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투쟁하는 정치가’라 부르며, ‘투쟁하는 정치가란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면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정치가’라고 정의했다. 일국의 총리가 책에서 저술한 말을 빈말이나 과장으로 볼 수 없다.

나는 지난해 4월 아베 총리와 단독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2007년 9월 질병으로 인해 총리 자리를 내놓은 초유의 사건이 있은 후 2012년 총리로 컴백하기까지 5년의 공백 기간에 ‘적과 동지를 알게 되었으며 무엇을 위하여 투쟁할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그의 성향이나 모습은 일본 보수층에는 크게 어필해왔다. 아베의 모친은 그가 ‘정책은 [총리를 역임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성격은 [외상을 역임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를 닮았다’고 평했다. ‘쇼와(昭和)시대의 요괴(妖怪)’라 호칭되던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직에서 퇴임하기 앞서 정권의 명운과 모든 것을 내걸고 싸웠던 정책이 있다. 국민의 반대, 정계의 반대, 심지어 집권 자민당 내부의 반대마저 모조리 물리치고 끝내 관철시킨 것이 바로 미국과의 신(新) 안보조약이었다.

1957년 총리가 된 기시는 1960년 1월, 미국을 방문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안보조약 개정안에 조인했다. 그리고 국내에 돌아와 동경대 야스다 강당 데모를 포함해 국민의 저항을 물리치고 개정법 가결과 시행을 선포한 후 괴한의 습격까지 받아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총리직을 사퇴했다. 정계를 은퇴했던 기시는 ‘이 안보 개정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50년은 걸린다’고 했다. 실제로 이 조약은 일본이 미국에 안보를 맡기고 경제 건설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그런데 기시의 사임 5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외손자 아베가 이를 새롭게 포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대국을 건설할 수 있게 한 법률체제를 개정하는 작업을 아베는 ‘전후레짐의 탈각’이라 부른다. 전후체제란 다름아닌 기시가 만든 신안보조약의 ‘전수방위(專守防衛)’ 규정이다.

군대가 있어도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 없는 체제에서 벗어나야[=脫却] 한다는 것이다. 61년의 신방위조약 제1조는 이 조약이 순수하게 방위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 원칙을 바꾼다는 것은 일본이 자랑해 온 ‘평화헌법’을 바꾸는 것으로 연결된다. 자민당의 슬로건을 ‘일본을 되찾자’라고 정한 아베 총리는 소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을 완전히 개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부의 헌법 해석을 바꾸겠다고 언명했다. 이른바 ‘해석 개헌’이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미국에 종속하는게 아니라 대등하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전후체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일본으로선 최대의 테마이며, 이는 과거에 처음 총리를 맡았을 때부터 변하지 않는 신념’이다. 그렇다면, 아베와 그를 둘러싼 지지자들이 갈망하는 집단적 자위권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유엔헌장 51조엔 ‘가맹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적인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를 위한 고유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이 이 ‘고유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논리적으로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1945년 8월에 총을 내려놓은 ‘일본군’이 이름을 ‘국방군’이라고 바꾸며 일본 영토를 벗어난 곳에서 제3국, 즉 미국과의 집단 방위를 위하여 전투 행위에 들어갈 수 있는 법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걱정거리다. 총 한 발 안 쏘고 평화와 번영을 누린 지난 70년의 세월이 날아가는 것, 그리고 이제 젊은이들이 과거와 같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입대해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같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아베 정권은 그러한 우려는 근거가 없다며 잡아뗀다. 그래도 반대가 지속되고, 여태까지 자민당의 보수 노선을 지지하던 층마저 의문을 제기하자 아베 정권이 내놓은 것이 자위권 발동을 위한 ‘새로운 3요건’이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이다. 즉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일본의 안전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협이 있는 경우다. 그런 경우가 뭐냐에 대해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베의 입장은 단순명쾌하다. 정부의 종합적인 판단에 맡기라는 것이다. 결국 법 조문이 모든 상황을 미리 열거할 수 없는 원천적인 제약 속에서 국제분쟁에 대처해 타국 군대의 지원을 수시로 가능케 한 국제평화지원법이라는 새로운 법, 자위대법 ・중요사태법 ・무력공격사태법 등 10개 이상의 안보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한 게 갈등의 핵심이다.

이 신법(新法)과 개정법들의 내용을 보면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실감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안보체제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의문을 풀어 줄 키워드는 미국이다. 예산이 부족하여 연방정부의 서비스가 중단되고, 각 주(州)에서는 노후한 도로와 교량이 부서져 내리는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는 경계의 대상이긴 커녕 오히려 환영할 낭보다. 아베의 지지율 저하에 주목하며 그의 우경화 행보가 멈추거나, 심지어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을 예상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대대적인 反아베 운동이 [단카이 좌파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지율 30%를 깨고 내려가면 중의원을 해산한다’는 경험칙이 이번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아베가 중의원을 해산해 ‘국민의 신임을 묻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의 이면엔 정당 지지율 분포도가 있다. 아베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는 이 시점에도 자민당의 지지율은 24% 정도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5.5%를 크게 앞선다.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한 공명당의 3.5%까지 합하면 여당의 지지율은 30%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은 무당파 계층이 60%가 넘는 전반적인 정치적 무관심에 따라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결국 설혹 아베가 중의원을 해산해 선거를 또다시 치른다 해도 재집권은 불보듯 뻔하다. 아베의 심중엔 기정사실화된 2018년까지의 집권기간에 소속 세이와카이(淸和會) 파벌이 추구하는 목표들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유일한 기회’에 전후체제의 탈각을 마무리 짓겠다는 결의를 다진 그들은 벌써 이례적인 배수진을 쳐놓고 있다.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이 참의원에서 만에 하나 통과되지 않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온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타임라인마저 계산해 놓은 것이다. 통상 이미 휴가에 들어갈 의회 회기를 9월 27일까지 연장시켜 놓았다. 한일관계 또한 전혀 다른 각도이지만 본질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 변화의 에센스는 ‘등신대(等身大)’란 말로 집약할 수 있다.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거는 한국이라면’ 이제 특별한 관계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몸의 크기에 맞게 따지고 가리자’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현실주의 태도는 ‘가치 체계를 공유하는 대상으로 믿었던 한국이 일본을 떠나 중국의 품에 안겼다’는 판단에 따라 한층 강해지고 있다. ‘전후체제 부정론’을 일본인들은 냉정한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위안부 ・독도 ・징용 배상의 현안에서 일본 정부가 전과 다르게 일관성있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배후엔 일본 국민의 의식 전환이라는 커다란 흐름이 있다.

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 by 노 다니엘 페닌슐라모니터 그룹 대표이사




              브뤼셀의 EEC 본부에서 기시 노부스케 일행과 회동한 할슈타인(Hallstein) 위원장, 1964년 9월 15일
              뒷줄의 우측 두번째가 당시 신참 의원이었던 아베 신타로이며, 아베 신조 수상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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