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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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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元嘉) 22년(445) 9월 계유일(17일), 황상(皇上, 宋文帝)이 무장강(武帳岡, 建康城 廣莫門 宣武場)에서 남연주자사(南兗州刺史)로 임명된 형양왕(衡陽王) 유의계(劉義季)와 전별(餞別)하였다. 황상이 나가려고 하면서 여러 아들에게 칙령을 내려 음식을 미리 먹지말고 연회장에 모이라고 하였는데, 땅거미가  져도 형양왕이 도착하지 않자, 왕자들이 배고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황상이 이에 다그치며 말했다.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넉넉하고, 편안히 자라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지 못했다. 이제, 너희들로 하여금 배고픈 고통을  이해시켜 어물(御物)을 절약해야함을 알도록 할 뿐이다."


배자야(裴子野)가 평론하였다.

훌륭하구나, 태조(太祖, 文帝)의 교훈이여! 대저 '사치'란 여유가 있는데서, '검소함'은 부족한 곳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뜻이 깊지만, 간략히 하고자 한다면, 빈궁하고 비천하게 하는 것만한 것이 없다... 송문제가 이러한 교훈을 실천시키고자... 황족에  대한  예우와 녹봉을 낮춰 교훈이 완성되고, 덕성(德性)이 세워진 연후에 정사를 맡기면, 게으르고 방탕하지 않아 구복(九服)으로 그것을 퍼뜨릴 수 있다.

고조(高祖, 宋武帝)는 줄기와 가지를 공고히 하고자 강보에 둘러싸인 아이(어린 황족들)를 높게 세웠고,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준수하여 교대로 방악(方岳, 지방행정과 군권)을 차지했다. 명제(明帝)~순제(順帝) 말기에 이르자, 이불속에서 숨이 막혀 (골육상쟁으로) 죽은 황족들이 벌써 수십명이었다. 국가의 존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찌감치 백성들의 위에서 방자하게 군림해 훌륭한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 짤방은 유송(劉宋)시대 명화(名畫) 육탐미(陸探微)의 <귀거래사도(歸去來辭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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