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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향수병 환자의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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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황제의 理想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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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寶慶) 2년(1226) 8월 경오일(17일), 공부시랑(工部侍郞)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인 정청지(鄭淸之)가 <자치통감(通鑑)>을 강론, 한(漢)나라시대 주목(朱穆)과 환관이 전횡한 것을 설명하였다. 정청지가 상주(上奏)하여 '서한(西漢, 前漢)의 사대부는 금중(禁中)을 출입할 수 있어서 인주(人主)는 오로지 부시(婦寺, 곁에서 모시는 시종)와만 거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상(皇上, 宋理宗)이 말하였다.

"...주성왕(周成王)의 제도엔  궁중에서 숙위하는데  모두 사대부를 채용하였으니, 인군(人君)으로 하여금 눈으로서 '정직한 사람'을 보게하려는 것뿐이었다. 정직한 논의를  듣는 것이란 '덕(德)'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기초이니, 한나라는 고래(古來)로부터  아직 멀지 않았었고, 오히려 성주(成周)의 남긴 뜻을 지녔던 덕분에 인군이 항시 사대부들과 친숙할 수 있게끔 했으므로 참으로 훌륭한 규칙이 아니던가?"

(황상이) 감탄하고 부러워하기를 오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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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송이종 자신이 환관 동송신(董宋臣)을 신임하였고, 더군다나 한나라 황제의 행실을 보자면...


연희(延熹) 6년(163) 12월, 상서(尙書) 주목(朱穆)은 환관들이 횡포한 것을 싫어하여 상소했다.

"한나라의 고사를 살펴보면, 중상시(中常侍)는 선비중에서 선발하였으나 건무(建武)연간 이후론 마침내 모두 환관을 기용하였습니다. 연평(延平)연간 이래로 점점 강성해져... 조정의 정사가 하나같이 환관들의 손을 거치니, 그 권세가  나라를 기울게 만들고, 총애를 받아 귀하게된 것은  끝이 없으며, 자제와 친척은 나란히 영예로운 자리를 맡아 방탕과 교만이 넘치지만, 금하거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리석으나, 신(臣)의 생각으론 지금의 환관들을 모두 파직시키고 줄여서... 처음으로 되돌아가 나라안의 선비 가운데서 전발해 보임시킨다면, 백성들이 성스러운 교화를  입게될 것입니다."

황상(皇上, 漢桓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문에 나중에 주목이 알현하여 직접 말씀을 올렸다.

"한나라의 옛 법전엔 시중과 중상시를 한명씩 두어서 상서의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황문시랑(黃門侍郞) 한 사람이 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성족(姓族)만을 등용했습니다. 화희태후(和熹太后)가 칭제(稱帝)하면서부터 공경(公卿)들을 접견하지 않았고, 환관을 상시로 삼아 소황문(小黃門)이 양쪽 궁(宮)에 명령을 전했습니다. 이리하여 권세가 천자를 능가하였고, 천하를 곤궁토록 만들었습니다.

의당, 모두 파직시켜 내보내고 유자(儒者)와 덕자(德者)를 선발, 정사에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황상이  노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주목이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자, 좌우 사람들이 나갈 것을 독촉했다. 한참만에야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이로부터 환관들이 자주 조서가 내려졌다는 핑계로 주목을 헐뜯었다. 주목은 강직하였는데, 뜻을 얻지 못하자, 얼마못가서 울분끝에 종기가 나버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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