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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공산화의 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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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일각에서 또 하나의 도미노가 무너졌다. 사이공 함락으로 시간문제라 여겨져왔던 라오스의 공산화가 마침내 성사, 인도지나반도  전체가 완전히 적화(赤化)되버린 것이다. 친공(親共) 파테트라오는 지난 3일, 6백년 역사의 루앙프라방 왕조를  폐지, 바타나 국왕을 폐위시키는  한편  푸마공(公)이 영도한 연립정권을 해체시켰다. 여기에 일당제를 언명한 인민공화국을 수립, 선포했다.

라오스에선  지난 20여년간 반공과 중립, 친공 3파(派)간 끊임없는 투쟁과  내란이 계속되어왔다. 58년의 우익정부 수립, 59년의 좌우파 내전 발발, 62년의 3파협정 성립과 내전의 재발, 74년의 새로운 연립내각 수립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온갖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차례로 함락당함으로써 하노이의 후원을 받은 파테트라오가 득세하기 시작하였고, 기어이 정권을 독점하고 말았다.

5월부턴 우익계 인사들이 차례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자멸해갔고, 파테트라오의 독무대하에 월맹군까지 합세하여 국방력 부재의 혼란을 겪었다. 사실, 73년 휴전협정 당시 파테트라오는 이미 전국토의 75%를 장악한 상태였으며, 친미우파 각료 5명을 사임시키고, 3명의 장성마저 해임당해 좌우연립정권의 구조를 무너뜨려 갔다. 푸마 수상은 공산화를 시인한 채, '운명의 날'만 기다리던 꼴이었다.

프랑스 식민시대  이전에도  라오스와  국경분쟁을  일삼아온  태국은  라오스 친미왕정의  붕괴로 심각한 충격과 압박을 받게 되었다. 사정이 그러한 것이, 방콕정부에 반기를 든 친공게릴라 세력이 라오스와의 국경지대에 거점을  확보, 파테트라오의 지원을  받기가  한층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공산화가 선언된 당일, 태국정부는 대국민 성명으로 '비상시국'임을 강조하면서  여론통합을 촉구하였다.

이번 라오스 정변은  캄보디아나 남베트남의 경우와는 달리, 대대적인  숙청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파테트라오의 수장이자 푸마의 이복동생인 수파누봉공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고, 제2인자이자, 친(親)월맹 성향의  폼비한을 신임 수상으로 임명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폐위된 바타나 국왕과 푸마공을  정부 고문으로 임명, 잠정적으론 평온함을 유지하였다.

미(美) 국무성  당국에선 '파테트라오의  라오스 지배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라며  언뜻 냉담한 태도를 드러내면서도, 라오스와의 외교관계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진작부터 예견되었던 사태인 만큼 새삼스러울 필요는 없겠으나, 미국의 패퇴(敗退)가 빚어낸 인도지나에서의 세력균형 붕괴, 그로 말미암은  진공상태와  여파가  진정되지  않았음을  반증해준 교훈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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