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권 일각에서 체제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크렘린 최대위성국의 하나인 폴란드에서도 반체제 운동이 부쩍 활기를 띠어가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지식인, 종교인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과 기에레크를 위시한 집권층내 온건파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 등 두갈래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위로부터의 개혁은 친소(親蘇) 보수세력과의 권력투쟁적 성격마저 지닌 것이다.
동구권에서 체제긴장을 야기시킨 일반적 배경으론 3년전 헬싱키 협정에 의거한 대(對)서방 문호개방과 유로코뮤니즘 영향을 지적할 수 있겠다. 다만, 폴란드의 경우 재작년 6월의 식량폭동으로 노정(露呈)된 경제위기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폴란드 공산당은 1960년대부터 전반적 사회정책을 둘러싸고 강온파간에 논란을 벌여왔었는데, 식량폭동을 계기로 알력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들의 대립이 표현화된 것은 작년 10월, 공산당내 온건파를 대변한 관영잡지 <폴리티카>지가 사설을 게재하면서부터다. 이 사설은 종전의 사회주의적 접근방식에 근본적인 회의를 표시하고, 개인의 창의력 존중을 기반삼은 경제개혁을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야로제비치 총리를 비롯한 보수파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정통사회주의 접근방식의 고수를 강조, 날카로운 대립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에레크 서기장은 국내정세 완화의 일환으로 외교공세 '전략'을 추진하였다.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로마가톨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작년 연말 공산권 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바티칸을 전격 방문, 바오로 교황을 알현하는 등 종교세력과의 제휴를 모색했다. 최근, 비신스키 폴란드 추기경의 기에레크에 대한 '협력'용의의 표명도 그같은 배경에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기에레크의 개혁 이니셔티브가 당내 보수파의 격렬한 저항을 받는 가운데 추진된다는 점에서 집권층내 내분이 향후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가는 부분이다. 또한, 식량폭동 직후 재작년 9월에 조직된 소위 '노동자보호위원회(약칭 KOR)'는 정권과 끈질기게 투쟁, 그간 투옥되었던 폭동 참가자들을 전원 석방시키는데 공헌함으로써 단연 폴란드의 반체제 운동에 활력소를 제공하였다.
KOR은 최근 그 기능을 확대, 공산정권에 대한 투쟁과 노동자의 권익, 자유언론의 실천을 기치로 소위 '3대강령'을 제시하여 반체제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에레크의 암묵적 묵인하에 2년여간 KOR의 성장에 자극받아 많은 반체제, 인권단체가 속출, 사민주의 성향의 KOR와는 대조적으로 보수민족주의와 가톨릭 이념을 바탕으로 한 '인권 및 시민권 보호운동'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공산당의 어용 학생단체인 '학생동맹'에 맞서 주요도시의 대학에 '학생단결위원회'란 조직이 결성, 활약중이며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폴란드 독립운동'이란 지하조직이 각계 재야인사의 후원하에 암약하는 실정이다. 이상의 반체제 단체들은 각기 상이한 이념을 추구하고 있으나, 지하언론을 통하여 반(反)공산당, 반소(反蘇), 민족주의의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식량폭동을 계기로 가시화된 폴란드의 정정불안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지난 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휩쓸어 유럽제국 전역에 파문을 일으켰던 '자유화'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한 인상마저 강하다. 이처럼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폴란드 정세와 관련해 모스크바의 대응책은 어떠한 것인지, 당대회 행사를 앞둔 기에레크 ・보수파간의 알력, 국가의 보루로 자처하는 군부측 동향도 주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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