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돌풍이 잠재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현지정세와 강대국들의 대응, 이집트의 정정(政情) 양상에 대하여 국제사회가 우려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번의 암살은 중동정세의 잠재적 위기요인, 이로부터 비롯된 불안정한 요소, 극히 미묘해지는 동서(東西)간 세력균형 문제의 갈등을 일거에 노출시켜 불확실한 전망을 가져다준 사건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입장에서 보자면, 페르시아만의 친(親)서방보루였던 팔레비 몰락에 이어 또다른 동맹자가 사라져 현실적으론 당장의 정치 ・군사적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팔레비 축출 이후의 이란을 중심으로 회교원리주의의 강화는 중동지역에서 서방세력의 기반을 축소시켰는데, 이를 보완시켜준 강력한 대안보루가 다름아닌, 사다트 영도하의 이집트였던 것이다.
대소(對蘇)견제의 역할을 감당키에 충분한 중동최강의 군사력과 지정학적 위치, 사다트 개인의 역량은 동서진영간 전개중인 균형다툼에서 서방측의 입장을 보다 유리하게끔 조성해왔던 요인들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사다트는 미국, 서방측의 '범세계'전략 핵심역할을 수행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사다트의 갑작스런 암살사건은 팔레비의 몰락 만큼이나 여파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중동3강(强)인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우디를 전략적으로 연결짓는 광범한 대소전략 수립을 목표로 삼았던 미국 주도하의 전략구상과 실천방안이 1차단계 마무리 작업에서 사다트 암살로 좌초된 듯한 분위기이다. 여기에 '위기양성화'의 우려가 높아진 것이다. 사다트의 죽음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관계는 전망이 불투명하며, 이집트의 친미노선 유지도 낙관할래야 할 수없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10여년전부터 중동에서는 회교원리주의에 입각한 거센 복고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가운데, 이란혁명은 아랍의 '정치적 민족주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것이 더 나아가선 실용주의 세력들과 마찰을 빚음으로써, 강온파간 갈등을 첨예화시켰다. 이집트의 아랍연맹 축출, 사다트와 카다피의 대립, 레바논의 내란은 아랍권내 양대세력의 대결을 입증해주는 사례들이다.
이집트 정정위기를 아랍권의 새로운 물결인 원리주의, 복고주의적 사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본다면, 사다트의 노선은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정반대의 차원으로 간주되기 십상이었다. 종국적으로는 그것이 암살이라는 개인적 비극과 장래 중동정세의 불확실함을 초래하고만 셈이다. 여하튼, 우리로선 산유국의 집결지인 중동 각국의 정세변화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가며 대처해야할 것이다.

tag : 이집트, 이란, 정정불안, 중동, 원리주의, 팔레비, 사다트, Assassination,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