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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향수병 환자의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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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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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은 지난 2세기간  버리지 못한 욕망이다. 이러한 숙원은 일로(日露)전쟁 패배로 무산되었다가 2차대전 이후 부활, 노골화되는 추세다. 국토의 2/3가 우랄산맥 동쪽에 자리잡은 지정학적 사정도 있지만, 아시아 세력으로서의 발돋움은 안보 ・전략면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해상보급로 차단, 제7함대 교란, 미군기지 무력화는 소련의 극동에서의 군사목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둔 소련 극동함대의 전력이 120만톤, 760척으로 증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1950년대 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의  극동 진출은 미국의 완벽한 봉쇄정책으로 성과가 지지부진하여 소련해군의 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베트남전쟁 당시부터였다. 1970년초 '오케안 1호'란 명칭의 범세계적 해상기동훈련이 첫 신호였으나, 베트남전 격화에 가려 소련함대의 활동은 주목받지 못했다.

'헬싱키 선언'으로 동구권 지배를 보장받으며 유럽에서 한숨을 돌린 소련은 아시아 진출에  더욱 혈안이 되었는데, 그 정치 ・외교적 목표는 중일관계 개선의  방해, 미국의  아시아정책  약화를  포괄하는  자국의 세력확장에 있음이 분명하다. 소련의 아태지역 진출기도는 1969년도 아시아 집단안보체제 제의로 이미 정형화, 극동함대 강화는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해는 소련의 내해(內海), 혹은 소해군의 훈련장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재작년엔 소련함대가 오키나와 근해까지  남하해  기동훈련을  벌이는가 하면, 일본해역에서  소해군 함정과  전투기의 출현이 매우 빈번해졌다. 마치, 동북아의 제해권이 소련측에 넘어가버린  감조차 없지는 않지만, 최대 관심사란 해상자위대의 증강 구상이  미군역할의  대행(代行)으로  연결되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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